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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독일에서는 소시지와, 미국에선 스테이크와, 한국에서는 치킨과 주로 먹는 술.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인류에 사랑받는 이 술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1만 1천년 전에 레반트(현재의 시리아-요르단-이스라엘)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경이 시작되었을 때보다도 이전.

1만 3천 700년 전에 최초로 맥주 양조장이 있었다. 아직 채집과 수렵의 삶을 살던 인류가 귀한 곡식을 챙겨 만든 것은

배를 채워줄 든든한 식량이 아닌, 맥주였단 얘기다.

 

맥주는 같은 시기에 개발되었던 또 다른 술, 포도주와는 궤를 달리 하는 면이 있다.

쉽게 상하는 포도의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바짝 말려 건포도를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생겨났던 포도주와 달리

주곡 작물을 이용하여 '식량 대신 술 자체를 목적으로' 빚은 맥주는 언뜻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는 괴베클리 테페 등과 연관지어,

수렵-채집의 삶을 살던 인류가 한 지역에 뭉쳐있을 이유(종교적 목적)가 생겼고

그로 인해 한 지역에 인구가 몰리자 농경이 필요해졌다는 이론과도 일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이론을 기반으로 하면 맥주 역시 종교적 이유, 축제 등을 목적으로 술을 만들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확실한 건 없지만..

이렇게 탄생한 맥주는 이집트에서, 기원전 3천년 경에 또 한 차례 발전한다.

인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직업이 세분화 및 전문화 되었듯이 맥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번에 2만 2천L를 대량 생산하는 대규모 맥주 양조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저때 당시 이집트의 맥주는 현대의 맥주와는 많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보리를 이용하였고, 누룩을 발효시킨 술이라는 점에선 일치합니다만…보다 원시적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맥주는 보리나 밀 따위의 곡식을 절구에 넣고 빻고 갈아서 가루로 만든 다음,

그 가루를 물에 개어 반죽하여 빵 반죽을 만들고, 이걸 구워서 보리 빵을 만든 다음 이걸 물에 개어서 삭혀내거나

혹은 빵가루를 물에 개어내고 한 차례 끓여내어 보리 죽을 만든 다음, 삭혀내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자연히 불순물이 많은 빵죽 (알콜 다량 함유) 이다 보니, 이 중에서도 건더기가 덜한 윗 부분을 건져내고 또 다시 그걸 갈대 등을 이용해 걸러내어 마셨다.

또한 홉이 안들어가는것 역시 하나의 특징이었다.

이런 고대 맥주와 가장 비슷한 현대의 음료(내지 술)가 러시아의 크바스다.

주로 보리를 이용한 빵을 효모, 설탕을 추가해 물에 개어 만들어내는 저알콜의 음료(러시아에선 술로 취급되지 않음.)

그 품질과 위생에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제조법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좀 더 찌꺼기가 많았을 것이다.

 

이러한 고대 이집트의 맥주 제조는 로마 제국에 의해 이집트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보리가 잘 자라던 유럽의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에 유입되게 된다.

 

이 지역에선 고대 맥주를 세르베시아라고 불렀으나,

고대 지중해 세계의 주류는 곧 포도주였던 탓에 소량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갈리아와 인접한 중부 유럽, 즉 게르만의 독일 지역은 이야기가 달랐는데

                                         ↑ 포도주 제조용 포도가 자라는 상한선을 로마 제국의 국경과 비교한 지도. 대체로 일치하는 것                                                을 알 수 있다.

 

 

 

독일 지역은 따듯한 남부 유럽과 달리, 포도가 자라지 않았기에 그들이 마시는 포도주를 즐길 수 없었다.

그러나 비교적 보리, 호밀 따위의 주곡 작물은 잘 자라는 편이었다.

 

마침 인접해 있는 갈리아(프랑스) 지역에 보리 빵으로 만드는 맥주 제조법이 있으니 독일인들은 맥주 제조법을 배워갔다.

현대 맥주로 가장 유명한 중부 지방(독일,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맥주가 이렇게 시작된것이다.

                                ↑ 유럽의 알콜 벨트.

                                빨강은 포도주, 노랑은 맥주, 하늘색은 보드카가 해당 지역의 대표적 주류이다.

 

 

 

이후 명맥을 겨우 이어나갈 뿐이었던 맥주는

프랑스에서 독일과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독일에선 술로, 러시아에서는 음료(크바스)로 발전하게 된다.

 

자연히 맥주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된 것이 중세의 독일이다.

이 때, 유럽에서 맥주란건 독일인들, 내지는 영국인들 정도 밖에 안 마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과 영국만이 먹는 술이란 의미는 상관이 없었다. 중세의 독일은 유럽 세계 최강국이었다.

 

한 차례 멸망한 로마 제국은 분열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 하였고,

프랑스는 100% 전력을 내더라도 이 시기의 독일과 비교해 압도적 열세에 처해있을텐데,

잉글랜드가 영토의 절반을 점령하면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반도는 이슬람 세계에 지배당하던 시기이고 북부와 동부유럽은 척박한 땅이었다.

사실상 제대로 된 문명국이자 제국은 독일에 위치한 신성 로마 제국 뿐이던 시기였다.

제국의 풍요는 곧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맥주도 마찬가지로 발전을 꽃피웠다.

독일 북부의 도시들간의 경제 연맹체, 한자 동맹은 맥주의 맛을 떨어트리는 대신 생산량을 증가시켜 제국에 보급하였고

15세기 말에는 바이에른 공 알브레트 4세가 맥주를 만들 때 물, 보리, 그리고 홉만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 것을 시작으로,

16세기 초에 이르면, 분열되어있던 바이에른 공 빌헬름4세가 1516년 4월 23일에 이를 바이에른 지역 전체에 적용하면서 (이전까지는 바이에른 지역이 여러 제후국들로 나뉘어 있었고, 이를 통일한 후 전 지역에 적용한 것.) 현대 맥주 제조법이 시작되었다.

 

한편, 같은 시기. 독일에선 라거가 발명되었다.

상온에서 만들고 발효시키는 에일이 이제까지의 맥주 세계를 주도하였다면,

늦가을에 제조하여 얼음과 함께 냉장보관, 발효시켜 만들어내는 라거가 등장하여 맥주 세계를 양분하게 된 것이다.

 

근대 맥주 세계 그 자체였던 독일에선 식문화 상 여전히 에일이 주도하고 있었지만,

가볍고 청량감이 좋은 라거 맥주는 조금씩 유럽에 퍼지기 시작했다.

 

라거는 대량 생산 및 보관이 용이하다는 장점 덕에 19세기 이후에는 맥주 시장을 주도하게 되었으며,

마침 미국으로 건너간 다수의 독일인들이 라거 맥주를 마시게 되면서 북아메리카 지역에도 널리 퍼지게 된다.

 

아시아에 맥주가 유입된 것은 19세기 중반~20세기 초반이다.

 

일본 : 1853년 흑선 사건 이후 개항, 1869년 삿포로에 독일인이 맥주 양조장을 세운 것이 시초.

 

한국 : 1876년에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면서 일본의 맥주가 유입된 것이 시초.

 

중국 : 1900년에 만주 철도를 건설하던 러시아인에 의해 만들어진 하얼빈 맥주

+ 1898년 독일이 산둥반도의 칭따오를 조차 후 1903년에 생산을 시작한 칭따오 맥주가 시작.

 

 

동남아 등지에서 마시는 맥주도 대부분 식민 시대에 유입된 것이나,

현대에는 모두가 맥주를 맛있게 즐기며 각 지역마다 지역 특색이 묻어나오는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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